[스란두일 드림]어느 요정 이야기(완결)

숲에서 돌아온 윤은 베개가 다 젖을 만큼 엉엉 울었다. 푹신한 침대와 몸을 포근하게 감싸는 두터운 이불조차 윤을 달래줄 수 없었다. 오히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커다란 침대와 두 사람이 덮고도 남는 이불은 헛헛함만 늘려줄 뿐이었다. 앞에서는 붙잡지도 못하고 제대로 말도 꺼내지 못하면서 무슨 생각으로 때가 되면 놓아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애...

요정왕은 어쩐지 윤이 너무 늦는다 생각했다. 윤을 맞이하러 온 숲의 입구에서였다.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있어 윤에게 곧장 가는 대신 숲에 먼저 들른 참이었다. 시계가 없으니 확인할 도리는 없으나 갈리온에게 윤이 이곳에 올 수 있게 대충 흘리고 오라고 시킨 게 한 삼십 분은 된 것 같았다. 저 멀리서 요정왕의 머리카락만 보여도 달려오던 사람이 오늘따라 도통 ...

저택에서의 생활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요즘 들어 스란두일의 얼굴을 보기 어렵다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저택에 돌아온 후 계속 윤의 옆에만 붙어있던 스란두일은 얼마 전부터 다시 출퇴근을 시작했고 요즘은 심지어 집에서까지 일하는 눈치였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퇴근은 하는데 그렇다고 일을 버려둘 수도 없어서 기껏 퇴근해서 윤에게 얼굴...

늦은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니 잘 시간이 한참이 지난 새벽이었다. 스란두일은 이미 잠든 윤을 껴안고 있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상반신을 덮고 있던 이불이 흘러내려 맨 가슴이 다 드러났다. 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잘 때는 옷을 입어야 한다며 꼬박꼬박 옷을 챙겨 입고 잤지만 스란두일은 굳이 그런 편은 아니었다. 약간 서늘한 밤공기가 살에 닿자 원래도 멀쩡하...

“사장님, 출근 안 하세요?” 소파에 늘어지듯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윤이 펴들고 있던 책을 살포시 덮으며 하루종일 제 옆을 지키고 있는 스란두일을 향해 물었다. 비단 오늘 하루만 그런 게 아니었다. 저택으로 다시 돌아온 이후로 쭉,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랬다. 처음 하루 이틀이야 좋았다지만 이쯤 되니 슬슬 걱정이 되었다. “왜, 그대는 내가 나갔으면 좋겠나...

“집이 왜 이리 춥더냐.” 오랜만에 윤의 집에 들어선 스란두일의 첫마디였다. 윤은 고개를 한쪽으로 살짝 기울였다. 이 나라에선 이게 보통이 아니던가. 윤이 살던 나라보다 겨울이 따뜻하긴 했지만 집 안 온도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저택도 아마 이쯤 됐으면 굉장히 추울 것이었다. 윤이 아무 대답도 않고 있자 스란두일은 알아서 거실 한쪽에 있는 라디에이터를 작동시...

싸늘한 기운이 감도는 새벽녘에 윤은 전신에 느껴지는 한기 때문에 잠에서 깼다. 이불을 둘둘 말았는데도 찬 기운이 사라지지 않아 몸을 웅크리고 덜덜 떨었다. 다시 잠들지 못하고 한참을 추위에 떠는 바람에 잠이 덜 깨서 멍했던 정신이 조금 맑아지니 창밖에서 비가 쏟아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엔 그래서 추운 건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닌...

중천에 걸린 가을 햇살은 유독 따스했다. 하지만 그 햇살만 믿고 있기에는 바람이 조금 차가웠다. 잔디밭 위, 푹신하게 깔린 자리에 누운 윤이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자 윤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던 스란두일이 말없이 여분의 담요를 덮어주었다. “추우면 이만 들어가지.” “괜찮아요. 조금만 더 있다 들어가요. 이렇게 있을 수 있는 기회도 흔치 않잖아요...

유독 하늘이 맑고 바람이 차지 않은 가을 하늘 아래, 윤은 난생 처음 타보는 말 위에서 열심히 비명을 질렀다. “으악, 사장님. 어떡해요. 말이 움직여요!” “그대가 발을 구르지 않았나.” 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못하자 스란두일이 나긋하게 윤을 달랬다. 잘 교육된 말은 애초에 그리 빠르게 움직이지도 않았고 윤의 큰 목소리에도 놀라지 않았다. 게다가...

스란두일은 자신이 하는 일에 제법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업무적인 것이든 사적인 것이든 다를 것은 없었다. 스란두일은 자신이 짠 데이트 코스를 만족스럽게 생각했다. 그래서 이른 아침부터 가벼운 발걸음으로 윤의 침실을 찾아갔다. 윤이 무급휴가를 내었던 그 날 이후로 맞이하는 첫 주말이었다. 사실 계획을 짠 것은 이미 며칠 전의 일이었지만 같은 주에 몇...

윤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던 광경에 잠깐 정신이 혼미해졌다. 지금 눈 앞에 펼쳐진 이 광경은 윤의 소시민적인 마인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윤은 어디로 보내드리면 되냐는 직원의 물음에 스란두일이 저택의 주소를 부르는 모습을 넋을 놓고 쳐다보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붙들고 스란두일의 팔뚝 역시 꽉 붙들었다. “저기, 잠시만요.” 붙잡은 건 스란두일이었지...

이전 날 굉장히 이른 시간에 잠이 들었던 윤은 어스름하게 해가 뜬 새벽에 눈을 떴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도 않았거니와 커튼까지 쳐져 있어 방안은 어둑했으나 형체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눈을 뜬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지 시야가 가물거려 주변이 제대로 분간되질 않았다. 한참을 눈을 깜빡거리며 시야를 회복하자 어렴풋이 제 앞에 있는 사람의...